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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 미국 & 한국

퇴사 후 미국에서 생활하기 - 1년 뒤 이야기

by 슬기로운언니 2017. 11. 15.

2016년 여름의 끝자락,

한국에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미국으로 왔다. 그리고 미국에 온 지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었지만 기억을 돌이켜보면 대부분 회사와 관련된 것들이다. 미국에 혼자 지내다보니 특별히 만날 친구도 함께 주말을 보낼 가족도 없으니 회사가 내 미국 생활 대부분을 차지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국에서 영어를 잘한다고 일까지 잘하는건 아니더라

 

나는 한국에서 하던 일을 미국에서도 똑같이 하고있다. 다시말하자면, 같은 업종으로 국가만 바꿔서 이직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미국에 와서 업무 방식이나 프로세스, 업계 생태 등에 대해 적응하는데 3개월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언어'였다. 3개월까지는 적응하느라 아무생각없이 회사 - 집만 왔다갔다했다. 6개월까지는 어느정도 귀가 열려서 상사나 팀원들이 업무지시 할 때 적어도 영어를 못알아 들어서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후 2개월 동안은 귀가 뚫리니 주도적으로 의사표현을 하려고 시도했지만 나의 모든 생각을 풍부하게 전달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점점 입을 닫기 시작했다.


팀원들이 업무 외에 소소한 잡담을 나누어도 굳이 업무에 필요하지 않으니 적극적으로 대화에 끼지 않았다. 업무를 할때도 말을 하기 전에 몇 번이고 곱씹어서 이 생각을 말로 내 뱉는게 필요한지 아닌지를 한참 고민한 후에야 내뱉었다. 10가지를 생각하면 그중에서 꼭 필요하다 싶은 의견 2~3가지만 말로 전달했다.


사실 이렇게 일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팀원들은 프로였고 굳이 많은 단어를 나열하지 않아도 나의 부족한 영어를 찰떡같이 알아듣고 일을 진행시켰다. 또 공식 미팅을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그랬듯 대부분의 업무는 이메일로 지시하고 전달하기 때문에 영어 문서를 읽고 쓸줄만 안다면 웬만한 업무는 진행 가능했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지만 언어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거나 팀원들과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런데 문제는 올해초부터 한국 정부 일을 맡으면서 불거졌다. 


한국 고객사에서 팀원들과 영어 소통이 어려운 상태에서 일을 진행하다보니 한국과 미국간 소통을 전적으로 내가 담당하게 되었다. 사실 말이나 글을 한글에서 영어로, 영어에서 한글로 번역하는건 그동안 미국에서 많이 하던일이라 괜찮았다. 


문제는 미국인에게 낯선 한국 제품이나 문화를 팀원들에게 이해시키고 일을 진행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10가지 생각해서 2~3가지만 말해서 일을 진행했다면 이번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10가지를 생각해서 10가지를 말해야하고 10가지를 들으면 10가지의 내 생각과 이해한 내용을 얹어 20가지를 팀원들에게 전달해야만 했다.


사실 한국 정부의 프로젝트는 나의 팀원들과 사장님이 나를 믿지 않으면 결코 시작하지도 않았을 일이다. 상상해보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회사에 단 한 사람 뿐이고 고객사는 영어로 소통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회사 운영에 있어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하는 사장님 입장으로서는 많은 위험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이 일을 지금까지 진행해오면서 사장님이 나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 "You should stay strong", "Don't give up" 이 두 가지였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나는 한국에서 오는 모든 정보는 내가 먼저 검토 후 팀원들이 각자의 업무 진행을 위해 필요하다 싶은 자료만 선별했다. 이후 미국인 팀원들이 해당 정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집된 영문 자료를 만들어 각각의 담당자들에게 전달했고 그들이 문서를 검토하면 앞으로의 업무 진행 방향에 대해 모두 모여 토론하고 내가 공유한 문서를 바탕으로 자세하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미국인, 일본인, 중국인 등 여러 국가 출신의 팀원들과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일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다. 


이렇게 대략 6개월 이상 업무를 진행하다보니 미국에서 능숙한 영어실력이이 곧 업무능력을 말해주는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완전히 현재 상황이나 업무 내용에 대해 이해하고 팀원들에게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설득 할 수만 있다면 일은 수월하게 진행 시킬 수 있었다.


사실 팀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사진 자료를 모으거나 엑셀에 수치 데이터로 표를 만들거나 PPT에 동그라미, 네모, 화살표 등의 기본적인 도형을 활용해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이 봐도 이해할 수준으로 자료를 만든다. 자료에 있는 영문 텍스트는 직접적이고 단순한 단어로만 구성한다. 조금이라도 팀원들이 이해하는데 있어 혼란을 줄만한 애매한 단어나 표현은 지양하고 직접적이고 명확한 표현들로 더이상 내용을 쪼개쓸 수 없을만큼 자세하게 풀어서 이메일을 쓰고 문서를 만든다.


한국에서 한국인들이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들이 일을 잘 한다고 말하기 어렵듯이 미국에서 일하는 모든 미국인들이 영어를 잘한다고해서 그들 모두 일을 잘하는 유능한 직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영어든 한국어든 똑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어떻게 하면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느냐 안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렇다고 영어를 못해도 미국 직장생활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에서 영어를 못하면 당연히 일하는데 무리가 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팁을 적용하려면 적어도 원어민처럼은 아니여도 기본적인 영어회화가 가능해야 하고 영어 문서를 읽고 작성하는것은 무리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걸 전제로 한다. 


나의 팁은 어디까지나 원어민 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한국인의 영어 실력을 다른 방법으로 보완함으로써 미국인과 동등한 업무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혹시, 당장 미국인 혹은 외국인들과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면 지금은 애꿏은 내 영어실력을 탓하기 보다 상대방(외국인)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전달하려고 하는 바를 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는 노력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깊은 친밀감은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다


우리회사는 PR, 광고 전문 회사인데 디자이너, 리서치 전문, 미디어 전문 등 프로페셔널 분야를 제외한 프로젝트 매니저 혹은 AE(Account executive) 등 전체를 매니징하는 영역은 나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계 미국인이다. 그들은 주로 일본어와 영어 두 가지 언어를 회사에서 사용하는데 서로 마주쳤다하면 일본어로만 대화한다.


회사 입사 후 6개월까지는 일본인들끼리 일본어를 사용할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했고 예민함이 극에 달했을때는 회사 내 팀원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 한국, 국가 대 국가 문제로 확대시켜 괜한 피해의식까지 느껴 "이럴꺼면 다시는 나같은 한국인을 고용하지 말고 일본인을 고용해라"며 사장님을 포함한 일본인 동료들에게 화낸적도 있다.


사실 일본인 팀원들은 일본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모국어가 더 익숙하기 때문에 업무 관련 이야기도 그들끼리는 일본어로 소통하는 것이 더 빠르고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줄 모르는 일본어로 일본인 팀원들끼리 업무 외 다른 시시 콜콜한 주제로 서로 웃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때면 나와는 나눌수 없는 친밀함, 유대감을 그들끼리는 공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생각이 꼭 옳지만은 않다는걸 확인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금방 왔다. 


일본인 팀원 중 한명이 비자 문제로 불가피하게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절대 끊어질것 같지 않아보였던 그들의 관계도 허무하게 끊어졌다. 회사에 남은 일본인 팀원중 어느 누구도 그녀가 떠났다고 슬퍼하거나 그리워하지 않았고 더이상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를 꺼낸적이 없었다. 또 사장님도 불가피하게 떠나야 한다며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미국 체류를 연장해 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직장생활 할때 나는 동료들과 늦은시간까지 야근을하고 난 뒤 술을 마시거나 밥을 먹으며 서로의 끈끈한 관계를 과시하듯 이런 회사생활을 지속했다. 업무 시간 중간에 상사와 함께 커피숍에 가서 차를 마시거나 다른 동료 뒷담화를하고 개인사에 대해서 서로 모르는게 없을만큼 많은 것을 공유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이런 관계를 회사를 그만두는 이후부터 아무 소용이 없다. 

끊어지지 않을것만 같았던 동료, 상사와의 관계는 가족, 10년 이상의 친구와의 관계보다는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 할 수록 업무를 빠르게 깔끔하게 진행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업무시간 내에 집중해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있는데도 팀원들과의 간식, 수다, 저녁식사 등의 시간으로 업무 처리가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 동료나 상사와 오랜 비즈니스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면 그건 밤늦게 까지 함께 술을먹고 야근하는것도, 개인 생활에 대해 모르는게 없을만큼 모든걸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얘는 내가 믿고 이 일을 맡길 수 있겠구나', '얘라면 이런식으로 일을 처리하지는 않겠지', '얘는 내가 이렇게 하면 이런식으로 분명 날 도와주겠지'와 같은 동료 혹은 상사들의 나에 대한 변함없는 믿음 혹은 신뢰가 건강한 비즈니스 관계가 아닐까.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소모적인 "회사 정치"에 할애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는 메신저 단체방을 통한 회사 사람들과의 소통이다.


한국에서는 카카오톡, 라인, 네이트온 등 메신저를 활용해 팀내, 회사내, 외에서 업무지시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개인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의 메신저에서 업무지시가 시작되면 업무시간의 개념이 없어지면서 업무외 회사내, 외에서 발생하는 가십거리도 꼭 회자되기 마련이다. 


업무와 관계 없는 동료 헐뜯기, 부하직원 개인사 파헤치기 등의 이슈를 메신저에서 다루기 시작하면 정해진 업무시간에 제대로 업무에 집중할 수 없을 뿐더러 일을 하려고 해도 제대로 진행하기가 어렵다. 


메신저 외에도 회사 내 쉬는 공간에서 동료들과 자리잡고 앉아 잡담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법인카드로 퇴근 후 회식을 하는 것 모두 회사의 생산성을 저해하는 한국 사내 정치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물론 처음 미국에 왔을때 퇴근후 회식문화, 동료들끼리의 잡담 등이 거의 없어서 조금은 한국의 이런 문화가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차츰 회식과 메신저 업무지시, 상사의 커피 한 잔, 술 한 잔 등이 없는 미국 회사생활에 적응하면서 회사 및 업무에 대한 피로감이 없어졌고 정해진 근무시간에 내가 목표로 정한 업무를 모두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서의 이런 회사 정치 행위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건 최근 한국 고객사와 내가 카톡 단체방을 통해 업무 관련 이야기를 시도 때도없이 하기 시작하면서다. 1분도 채 안되어 10건 이상씩 쏟아지는 고객사의 업무 지원 요청 그리고 이와 함께 쏟아지는 가십거리들을 다른 업무를 진행하면서 대응하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분명 나는 회사 자리에 앉아서 일을 한 것 같은데 사실 나는 제대로 진행한 일은 없고 카톡응대만 하느라 오전 시간을 허비했다. 카톡응대한 내용도 사실 메일로 정리하면 1/2페이지 정도로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업무 외 불필요한 잡담이나 개인 메신저 이용은 업무 관련해 우리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특히 개인 메신저를 통한 업무 지시는 개인 메시지를 이용하지 않는 다른 팀원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 정보를 놓칠 수 있으며 메신저 대응을 실시간으로 해야하는 당사자도 충분한 시간과 고민을 하지 못한 채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아 합리적인 결정을 하기가 어렵다.  


한국은 생산성이 낮은 국가로 유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앞으로 AI와의 경쟁을 통해 로봇이 결코 해낼 수 없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창의성과 관계맺기 등의 영역을 통해 AI 직원과 차별화도 해야하고 생산성까지 끌어올려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제조업 중심이었던 이전시대와 창의성, 혁신과 같은 능력이 중요한 현재, 미래를 비교해보며 어떤 기업문화가 필요한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바꿔 나가야 할 때다.  



'신뢰'는 국가를 불문하고 가장 중요한 비즈니스 덕목이다 


미국에서 비즈니스 할때 미국 고객사는 대부분 에이전시를 자주, 특정한 사유 없이 바꾸지 않는다. 한 번 계약하면 기본 3년 이상인데 한인 회사만 유독 빈번하게 에이전시나 벤더를 1년 단위로 바꾼다. 이런 경우 에이전시나 벤더 모두 고객사에 대한 충성도가 낮아 결과물이 좋지 않고 작은 프로젝트에 대한 비용도 장기 계약건 보다 많이 높다.


업계의 사례 외에도 미국인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편이다. 일례로 가격이 다른 주유소가 바로 옆에 2-3개 붙어있어도 기름값이 가장 싼 곳에 몰리는게 아니라 가격이 바로 옆 경쟁 업체보다 높아도 본인이 믿고 사용하는 브랜드만 사용한다.


이외에도 신뢰는 개인적으로도 미국 회사 내에서 나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데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덕목이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한 채 미국 회사에 입사했을때 회사 동료들에게 '내가 믿을 만한 사람이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지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난 지각 잘 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그랬듯 미국에서도 정해진 출근시간보다 최소 15분 전에는 일찍 출근했다. 


한국에서의 직장 동료들은 미국 동료들과 다르게 대부분 부지런해서 이들과의 차별화를 위해 최소 40분~1시간 전에 출근하곤 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미국인 동료들이 대부분 정시에 딱 맞춰오거나 지각하는 경우가 많아 15분만 일찍 출근해도 동료 또는 상사에게 출근시간으로 나의 성실함을 어필하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1년이 넘는 기간동안 단 한번의 지각없이 다른 동료들보다 15분 일찍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회사에서 내가 "이렇게 하고싶다" 혹은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했을 때 처음과 다르게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내 의견에 따라주는 사장님 그리고 다른 국가 출신의 동료들이 있기까지 이런 나의 노력이 한 몫 했을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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