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미국에서 어머니의 지방선거 출마를 돕기위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줄곧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느낀 것은 홍보, 광고를 업으로 삼고 있는 내 직업이 쓸만하다는 자부심이었다. 


어머니의 일을 돕던 중 어느 외국계 회사 경력직 면접을 보았다. 총 3시간의 면접이 진행됐고 이후 몇 가지 면접관의 질문이 머릿속에 남아 고민의 흔적을 후기글로 남긴다.



Q. 미국에서 일할 수도 있었는데 왜 다시 한국에서 일 할 생각을 하신건가요?


한국에서 일하기 싫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딱 두가지 뿐이다.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일하거나 현재의 직장에서 순응하며 일하거나. 


한국에서의 직장을 그만둘 때만해도 나는 한국에서 더이상 일하고 싶지 않았다. 첫직장에서 느꼈던 좌절과 답답함, 슬픔 등을 안고 국내에 있는 다른 직장으로 옮긴다해도 내가 만족할 만한 직장은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행을 택했고 운좋게 미국에서 내가 원하던 직장생활을 하게 됐다. 


미국 광고회사 사장님은 내가 원하는대로 나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고 내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켜봐주었다. 도움은 내가 요청할때마다 조언이든 질문이든 자료요청이나 확인요청 등의 형태로 무엇이든 해주셨다. 동료들은 자신의 일을 한국 관련해 도움이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업무를 떠넘기지 않았다. 직위를 떠나 여러 국가 출신의 동료들이 서로 동등한 파트너가 되어 회사의 공동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만 노력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와 굳이 한국 회사 채용 면접을 본 이유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한국 기업문화, 업계의 잘못된 관행 등을 미국에서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개선해보고 싶었다. 이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는데 미국에서 유일한 한국인 담당자로 근무하다보니 내가 꽤나 '내 나라를 사랑하고 있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렇다고 애국자라고 나 스스로를 묘사하고 싶지는 않다. 최근 애국자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 광장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들하고 내가 같은 정치적 취향을 지닌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애국은 배타적인 성격도 강해 내 나라 외에 다른 나라 사람, 타문화 등을 덜 존중하게 될까 우려되어서다. 


그저 같은 일을 한다고 했을때 미국을 위해서 나의 재능을 쓰기보다 나를 이만큼이나 키워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나사못같은 도움이 되고 싶을 뿐이다.



Q. 어떤 상사를 원하며 본인은 어떤 상사가 되고 싶은건가요?   


이 질문을 받고 나는 내가 이제는 막내가 아닌 후배를 둔 선배의 자리에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 

한국에서 인턴부터 신입사원으로 근무했고 미국에서도 특별한 직급이 있었던건 아니지만 나보다 경력이 훨씬 많은 동료, 상사 뿐이었기에 선배로서의 나의 모습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본인이 원하는 상사의 유형은 사람마다 제각각 일것이다. 나의 경우 상사가 부하직원을 믿지 못하고 A부터 Z까지 혼자서만 하려고 한다면 내 스스로 성장할 수 없을것 같아 선호하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직접 일할 수 있도록 방향을 짚어주는 상사를 원한다. 그리고 내가 되고싶은 상사로서의 모습 또한 내가 원하는 상사 모습과 같다.


그런데 시간을두고 고민하다보니 후배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상사의 모습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좋다고 생각하는 상사의 모습만 생각하다보면 정작 후배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나도 모르게 하게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나는 나쁜 선배, 상사, 젊은꼰대가 되어 있을것이다. 가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 나쁜 상사의 모습을 스스로 고민해보고 평소에 이를 행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쁜 상사 유형은 어떤게 있는지 국내 포털사이트에 '나쁜 상사 유형'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보았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7년 직장인 84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장 상사와 근로의욕'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는 아래와 같다. (참고기사: http://www.viva100.com/main/view.php?key=20170306010001916)


<근로의욕을 꺾는 상사의 유형>

1위. 책임회피형

2위. 감정의 기복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감정기복형'

3위.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CCTV형'

4위. 소신 없이 회사, 상급자 방침만을 꾸준히 직원에게 전달하는 '깔대기형'

5위. 부하직원의 아이디어와 의견을 무시하는 '의견 묵살형'

6위. 부하직원의 성과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성과 스틸형'

7위. 중요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결정장애형'

8위. 평가가 공정하지 못한 '쏠린 저울형'

9위. 일을 믿고 맡기지 못하고 1부터 10까지 다 해주려고 하는 '헬리콥터형'



면접 답변으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제가 직접 일할 수 있도록 방향을 짚어주는 상사를 원한다"고 하자 면접관 중 한 명이 "그럼 슬기씨는 상사에게 컨펌(confirm) 받는거 싫어하겠네요?"라고 되물었다. 이 질문을 받고 나는 면접관이 어떻게 업무를 진행하는지 알게됐다. 아마 상사나 회사가 요구하는 일만 수동적으로 처리하는 직원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나 스스로 주체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지원 및 개입만 해주는 상사를 원한다는 말에 '상사의 컨펌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연결할 수는 없다.


사실, 국내 회사 생활에서 "컨펌 부탁 드립니다", "컨펌 해주세요"의 말을 자주 쓴다. 적어도 내가 몸담았던 광고, 홍보업계에서는 그렇다. 대부분 한국식 컨펌 요청은 상급자나 고객사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승인을 의미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영어 단어 'Confirm'의 뜻은 한국식과 다르다. 회사나 상급자의 수직적인 승인, 허락의 뜻이 아니라 동료와 동료, 동료와 상급자, 회사와 고객사 등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의 작업물에 실수가 없는지, 개선할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확인하고 이에 대해 의견을 내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과정 중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주로 'Please confirm this attachment and let me know if you have any questions'라고 사용하며,

상급자나 고객사, 회사의 허락이 필요할땐 'confirm'이 아니라 'approval'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뜻을 구분한다. 이럴때는 'We have done with this work, please approve this so that we can move forward'라고 사용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면접관이 "슬기씨는 상사에게 컨펌받는거 싫어하시겠네요?" 라는 질문을 받았을때 순간 컨펌의 뜻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마 나의 상식으로는 나의 대답이 상사의 컨펌을 싫어하는 직원으로 연결될 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것 같다. 면접관이 묻는 컨펌의 뜻은 한국식으로 쓰이는 '상사의 허락, 승인'이었을 확률이 높다.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하는 '시험용 말하기'였기에 결국 이 질문에는 내 나름대로의 '컨펌(Confirm}'에 대한 정의를 내렸고 이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을 말했다. "컨펌 받는 과정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컨펌은 작업의 완성도를 높히기 위해 동료간, 선후배간 의견을 주고받는 필수 과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업무절차 중 하나입니다. 다만, 상사의 업무지시를 전달만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것은 지양하는 편입니다"라고.


총평

몇 가지 질문이 더 있었는데 지금 기억나는게 두 가지 밖에 없어 우선 이정도로 정리했다. 면접 본 지 꽤 지났는데 이 날 면접이후 다른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더이상 지원하고 싶지않았다. 그래서 현재 하고있는 가족 일에 집중하기로했다. 


어떤 헤드헌터는 "슬기씨가 찾는 그런회사 한국에 없어요. 그럴꺼면 그냥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일하고 싶은 근무환경으로 연 퇴사율이 30%가 넘지 않고, 야근을 매일 매일 하지 않고, 직장 리뷰 사이트의 점수가 3점 이상이 되어야하며, 사람을 존중해주는 회사였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졸지에 나는 한국물정 모르는 까다로운 구직자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그런 취급을 받는건 중요하지 않다. 단지 한국에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한국에는 없는것 같아 안타까웠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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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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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찰떡이좋아 2018.04.26 14:03 신고
    어떤 장소나 그룹에 속해 살던 사람이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내다보면
    과거를 회상하게되고, 새로운 곳과 과거의 것을 비교하게되더라구요.

    마치 연인끼리 죽고살고 할 땐 지지고볶느라 상대의 단점을 못 보지만
    헤어지게되고 시간이 흐르면 그(녀)의 단점이 떠오르죠.

    마찬가지로 언니님도 고국을 떠나 새로운 룰이 통하는 곳에서
    지내다보니 과거의 고국이 생각났고, 비교가 되었을 겁니다.

    미국엔 미국의 일하는 불문율이 있고, 한국엔 한국인이 일하는 불문율이 있죠.
    그 불문율이 만들어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사회구성권간의
    이전투구가 있었는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까?
    거대한 모임의 인간들이 자기 지역에서 또는 일터에서 만들어 낸 불문율.....

    그거 못 바꿉니다. 장맛비로 콸콸 흐르는 강물을 거스를 수 없듯이...

    세상엔 완벽한게 없는거 같습니다. 강점이 있으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약점이 있고.
    미국 시스템과 한국 시스템....
    음식을 떠 올려보시길... 아무리 서양화되었다고 해도...한국사람들 아직도 김치 못 버리죠?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그 나라의 음식이나 예술은 그 나라의 풍습과 기후, 토양과 관련이
    있더라구요. 삶의 방식도 그것에 종속되어있고... 물론 바꿀 수 있죠. 어마어마한 거대한
    반대의 기운과 맞딱뜨리지 않으면 금방 바꾸기는 불가능...

    한국인 식탁에서 김치를 없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게 답이죠.

    ps: 저도 한국에 돌아와서 재취업했는데, 고기 맛을 알면 중이 절에 못 있는다는 그 말이 맞더군요.
    고기맛이란 한국과 다른 (상대적으로 )합리적 직장환경에 길들여진 저를 말하는 겁니다.
  2. 근무문화개선 2018.05.08 15:18 신고
    안녕하세요. 저는 스웨덴에서 일하고 돌아왔습니다. 쓰신 글이 공감되어 글 올립니다. 저도 최근 한국 회사에서 인터뷰를 봤는데 몇 가지 질문이 오고 갔을 뿐이지만 문화 차이를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회사에서는 결혼계획이 있는지 물었고 어떤 회사에서는 -스웨덴에서는 칼퇴하지 않아요? 우리 회사는 항상 바쁜데 일 할 수 있으시겠어요? - 몇개월 일하고 또 외국 나가는거 아니예요? 뭐 그전에 우리가 먼저 자를수도 있긴 하지만.. 이런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전 한국회사에서의 스트레스가 그대로 다시 이어지겠구나 싶더라구요. 스웨덴에서 처럼 스트레스 하나 없는 근무환경은 바라지도 않고 서로 배려하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은 마음인데 정말 그런 회사는 한국에 없는 건가 싶네요. 야근을 종용할 것이 아니라 야근을 하지 않고도 근무시간내에 업무를 끝낼 방법을 찾기 위해 프로세스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볼 생각이 있기는 할까 궁금하네요.. 슬기로운 언니는 좋은 길을 아시니까 꽃길만 걸으실 꺼예요. 화이팅!:)
  3. Patrick Chun Sin 2018.05.08 15:35 신고
    저는 미국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실리콘 벨리에서 연구를 하다가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거짓말에 효도한답시고 한국으로 왔다가 한국 회사생활에 진저리를 치고 지금은 5년째 백수로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명예 엔지니어에 TauBetaPi 멤버였고 미국 11대 기업 개발팀에서 보너스를 그 어떤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고 일을 했습니다. 한국 와서 삼성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미국에서 연구한것을 배껴주고 사장 영문 자서전을 써주면서 연구다운 연구는 하지 못하고 매일 회식에 끌려 다니다가 집에 오면 새벽 2-3시까지 아버지의 술주정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 미국에서 20여년을 살았고 술담배를 하지 않습니다. 혼자 20년을 살다가 한국와서 그런 환경에 있어야 할 스트레스는 감당할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는 술만마시면 폭력이 나오고 집어던지는 사람입니다. 술에 치이고 삼서이라는 이상한 회사 문화에 치었습니다. 회사가면 군대 문화때문에 아침 11시에 수원 켐퍼스에서는 공짜 아이스크림이 나옵니다. 그걸 같이 먹으로 저희 연구팀이 갈때 혼자 일하면 욕을 먹고 점심도 먹고 싶은 음식 먹지 못합니다. 팀이 먹는 사원식당에서 상무가 먹는 음식 뒤에 줄을 서서 갑니다. 그런 삼성이 싫어서 벤쳐기업엘 갔는데 거긴 술담배는 강요 하지 않았지만 목사가 매일 회사에 와서 점심을 먹으면서 설교를 하고 아침에는 예배를 봅니다. 토요일에는 방방 뛰면서 노래까지 부르더군요. 전 무교입니다. 미국에서 살면서 친구들 (물론 한국인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종교를 강요한 사람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회사로 옮겼습니다. 거긴 자동자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중견 기업이었구요. 그 회사의 회장 사위가 벤쳐기업을 만들고 소속은 그 중견기업으로 하고 만들었습니다. 근데, 그 회사는 술담배를 강요 않한다고 저를 뽑았는데 결국 제 소속은 그 벤쳐가 아니고 그 중견기업 소속으로 남오더라구요. 결국 이상한 회식에 폭탄주강요에 별일 다보았고, 그 회사가 회사원의 돈에서 몇만원씩 빼서 정치인 후원 하는 꼴 까지 봤습니다. 그리고 소속이 그 회사가 되다보니 연구원이 제게 양복을 입고 다니라 하더군요. 장난 합니까? 청바지 입고 공구/도구 만질 연구원보고 매일 양복으로 출근하라니...
    그 회사 나오고 파주에 좋은 회사 하나를 찾았습니다. 너무 멀더군요. 운전으로 출퇴근시간만 하루 4시간 주말에는 5-6시간... 길이 엄청 막혀서. 집을 구해서 그쪽으로 홀로 이사를 갔습니다. 미국서 모은돈은 이미 한국 에서 회사생활을 실패 하다보니 줄어들기만 해서 아버지 께 돈을 빌렸습니다. 집을 그 회사 가까이 구해서 살기 시작했는데 아버님이 돈을 한달에 제가 갑으루 있는 두배을 원하시더군요. 그 회사는 좋았지만 월급이 작아서 결국 회사 접고 돈 값고 지금은 5년째 백수입니다. 제 인생에 비교 하시면 님은 그래도 낫다고 생각 됩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외국회사를 알아보세요. 저는 자살까지 생각 하고 있습니다. ♩♫♬같이 효도 한답시고 한국을 와서 인생을 망한 케이스입니다. 니믕ㄴ 아직 기회가 있어요. 좋은 하루 되세요.
  4. 저는 오히려 글쓴이 님과는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저도 홍보 관련하여 전공 하고 한국에서 미국계 정부기관 및 한국계 홍보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 이후 저도 가족 사업을 돕고자 2년 반 동안을 어머님과 외삼촌을 도왔으나,
    결국 가족과 같이 일하는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 및 회의감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동남아에서 구직활동하여 지금은 홍보와 관련없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으나
    언제나 다시 홍보쪽으로 돌아가고 싶고, 결국 한국보다는 외국사람들과 일하는게 저한테 맞더라구요.

    한국의 기업문화가 저랑 너무 안맞는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느끼고 방황 많이 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님의 가치관에 공감합니다.
secret

최강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얼마 전 미국에 있는 지인 부탁으로 인해 미군의 서울 투어 가이드를 해 주었다.

 

사실 지인의 부탁을 받자마자 '못한다'고 거절했었다. 이유는 투어 대상이 단순 미국인 또래 친구들이 아닌 미군이었고 미군 중에서도 육군 준장(여자 장군), 중위가 속한 미군 그룹 투어라 전문 투어 가이드도 아니고 이전에 한번도 외국인 친구들을 한국 투어 가이드 해 준 경험이 없어 선뜻 나서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탁을 승낙한 이유는 비록 외국인 투어 가이드 경험은 없어도 상대방이 만족할 만한 투어를 시켜주면 전문 가이드만큼 능숙하게는 못해도 70% 이상은 성공할 것이라는 내 나름의 이유있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나의 직업은 마케터, 홍보 전문가, 커뮤니케이터 등으로 불리는데 이런 직업의 공통점은 내가 타깃으로 삼은 대상이 내가 제공하는 콘텐츠나 메시지로 하여금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음을 움직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 마음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안되던 일도 잘 풀리게 마련이고 못해도 잘했다고 칭찬해준다는 뜻이다. 


이러한 내 직업의 강점을 미군의 한국 투어에 반영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아래와 같은 주도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미군부대 입구에 신분확인 하는 곳. 미군부대는 온라인 지도에도 정확한 위치가 없고 

부대 근무자 또는 미국 시민권자와 동행해야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다고 한다.


상대에 대한 정보수집하기

첫번째 단계는 상대방(타깃)에 대한 정보수집이다. 상대의 취미나 친구, 인맥, 기호품 등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면 대화 시 화제를 이끌어 나가거나 투어 코스를 짜기가 수월하다. 상대의 리듬에 맞추어 관광지와 먹거리, 대화 주제를 설정하고 각각의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정보의 힘은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발휘된다. 무턱대고 화려한 치사로 상대를 부추기거나 설득하려 들면 마이너스 확률이 높지만, 이미 상대를 알고 시작한 게임이라면 승리의 확률이 높다.  


내가 투어 가이드를 해 줄 대상은 미군 중에서도 준장과 중위 등 3명으로 구성된 그룹이었다. 특히 준장은 장군급에 해당하며 그룹 내에서 가장 계급이 높았고 유일한 여성이었다. 



Private_________________E-1, PVT___무등병/훈련병
Private (2nd Class)_____E-2, PV2___이등병
Private 1st Class_______E-3, PFC___일등병
Specialist______________E-4, SPC___상등병
Corporal________________E-4, CPL___상등병
Sergeant________________E-5, SGT___병장
Staff Sergeant__________E-6, SSG___하사
Sergeant 1st Class______E-7, SFC___중사
Master Sergeant_________E-8, MSG___상사
1st Sergeant____________E-8, 1SG___선임상사
Sergeant Major__________E-9, SGM___원사
CommandSergeantMajor____E-9, CSM___주임원사
SergeantMajorOfTheArmy__E-9, SMA___육군주임원사
Warant Officer 1________W-1, WO1___준위
ChiefWarrantOfficer2____W-2, CW2___상급준위
ChiefWarrantOfficer3____W-3, CW3___상급준위
ChiefWarrantOfficer4____W-4, CW4___상급준위
MasterChiefWarrantOfficer5__W-5, CW5___수석상급준위
2nd Lieutenant__________O-1, 2LT___소위
1st Lieutenant__________O-2, 1LT___중위
Captain_________________O-3, CPT___대위
Major___________________O-4, MAJ___소령
Lieutenant Colonel______O-5, LTC___중령
Colonel_________________O-6, COL___대령
Brigadier General_______O-7, BG____준장 
Major General___________O-8, MG____소장
Lieutenant General______O-9, LTG___중장
General_________________O-10,GEN___대장
General of the Army_____O-10,GA____원수(전시에만 임명)



투어 일정을 짤 때 반영할 만한 그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 

(계급이 높은 장군의 경우 지인으로부터 미리 프로필(Bio) 자료를 따로 요청해 받았다)


1. 나이가 어리지 않다는 점 (30대 초반에서 50대 중반) (모두 기혼, 높은 계급 등)

2. 진짜 서울의 모습을 하루만에 보고싶음.

3. 한국은 그동안 수차례 방문했지만 미군부대 밖으로는 나가 본 적이 없음. 즉, 첫 한국투어.

4. 여자 장군은 채식주의자 

5. 쇼핑, 관광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반 관광객이 아닌 군인. 즉, 걷기에 좋은 체력을 갖고 있고 쇼핑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음. 

6. 모두 California 거주


여행하면서 실제로 그들은 쇼핑에는 관심이 없었고(인사동 쌈지길을 단 10분만에 등산하듯 올라 5분만에 하산하듯 내려와 투어를 끝내버렸다) 영하의 날씨에도 하루 종일 서울지역을 대중교통 없이도 걸어다닐 수 있는 강철 체력을 지녔으며 한국의 전통적인 모습(옛날 생활방식, 전통 먹거리), 현대적인 모습(건축물, 음식 등), 역사(일제시대, 조선시대) 정치 및 외교(새로운 정부, 북한) 관련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투어 일정 및 코스(Itinerary) 짜기

위 처럼 미리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놓았다면 투어 코스를 짤 때 수월하다. 

인터넷에 '외국인 한국투어', '외국인 서울 투어' 등의 키워로 검색하면 수많은 여행 코스가 일정별로 나온다. 그 중에서 상대의 취향 등을 반영한 코스 몇가지를 선별해 나만의 일정에 반영하면 끝이다.


대략적인 투어 코스(장소)를 인터넷 블로그들을 통해 선정했다면 해당 장소에서 할 만한 체험, 먹을만한 음식들은 세부적으로 선별하면 된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 '통인시장'을 투어 코스에 넣었는데 통인시장에서 외국인들의 입맛에 맞을 만한 음식은 유튜브 <영국남자> 채널을 많이 참고 했다. 


이 채널을 통해 만두, 찐빵, 호떡, 전 등 외국인 입맛에 비교적 잘 맞는 음식들을 미리 선별, 해당 장소에 방문해서 미리 선별한 음식점에서 먹으니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고 외국인들의 만족도 또한 높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M6Cybu7MAEY



▲유튜브 <영국남자> 채널 '통인시장' 편 스크린샷 이미지 & 비디오 링크


투어 코스는 서울 북촌, 경복궁, 삼청동 주변에서 모든 투어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짰다. 

처음 삼각지에 위치한 용산 미군부대에서 경복궁 역으로 이동할때만 지하철을 다같이 이용하고 이후에는 줄곧 걸어다녔다. Kelly가 처음부터 "진짜 한국을 보고싶다"고 주문했기에 한국 출근시간인 9시에 지옥철도 미군들에게 맛보여주었다. 이때 미군들은 한국인의 70%가 서울에 거주한다는 사실과 한국은 미국과 달리 지하철 시스템이 매우 잘 되어있어서 지하철이 인기있는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알고 놀라워했다.



대화의 주제 선정하기 

대화의 주제를 미리 선정하는 작업은 사실 친한 친구가 아닌 낯선 사람을 만나는 모든 자리에 필요하다.

나의 경우 업무로 인해 기자나 다른 비즈니스 파트너들을 만나 함께 일하고 미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대를 만나서 아이스브레이킹으로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할 지에 대해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이때도 정보수집을 위해 만나는 기자의 최근 기사를 읽어보고 주요 관심사가 무엇인지 파악하거나 지인을 통해 상대방의 성격, 취미 등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 나와의 공통점(거주지, 학연 등)을 찾아낸다. 


이번 미군들의 투어에도 예외없이 이러한 나만의 룰(?)이 적용됐다. 이들 모두 내가 거주했었던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캘현재오 캘리포니아에 거주하고 있었고 거주지가 내가 거주했던 곳과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을 프로필 자료를 통해 발견했다.   


만나자마자 "나도 캘리포니아 토랜스에서 최근까지 거주다", "캘리포니아와 다르게 한국은 날씨가 추워서 지내기 춥지 않냐" 등의 이야기로 그들의 공감대를 얻고 쉽게 다음 대화의 물꼬를 틀려고 했다.  


이런 일련의 잡담(?)이 낯선 사람들과 만날때 필요한 이유는 상대방이 조금 더 쉽게 나에게 마음을 열고 지속적인 대화를 하게끔 만드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상대방에게 아쉬운 부탁을 해야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경우 적용하면 좋다. 


하지만, 이런 아이스브레이킹 없이 바로 상대를 만나자마자 용건부터 이야기 하거나 부탁을 하는건 승률이 없다. 무슨 일이든 대면 커뮤니케이션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마음을 얻음으로써 그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군과의 대화가 수월했던것만은 아니였다.

나의 짧은 식견과 부족한 지식으로 인해 미군들의 한국 역사, 정치, 외교 관련 광범위한 이슈에 대한 질문을 바로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이때마다 나와 이번 투어 보조 가이드 역할을 했던 동생은 손이 시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을 꺼내 검색을 했었야 했다.   

 

참고로 질문의 내용 중 기억나는 것을 적어보자면 대략 "한지는 무엇으로 만드는지?", "옛날 고궁은 어떻게 방을 따뜻하게 데웠는지", "일제치하 기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 "처마에 있는 장식은 무엇이고 왜 그것을 장식했는지?" 등이었다. 



별거 아닌 외국인 친구들의 한국 투어 포스팅을 이처럼 장황하게 적은 이유는 단지 외국인 한국투어 일정을 소개하고 싶은게 아니라 외국인 혹은 비즈니스 파트너 등 모든 낯선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투어를 함께한 미군이 미국에 돌아간 후 보낸 땡큐 이메일



단지, 이 노하우는 이번 투어를 포함한 나의 모든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했고 앞으로 더욱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 훗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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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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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 엄마가 다 늙어서 정치하는 게 싫다. 시에서 나오는 활동비로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길 해 시정활동 한다고 맨날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니 집안 청소나 살림이 잘 되어 있기를 해


엄마의 의정보고서 작성을 돕고 있던 나를 슬쩍 보더니 술 취해서 들어온 아빠가 엄마가 없는 틈을 타 한 말이다.


아빠의 이런 푸념을 듣는 순간 듣고 보니 아빠 말도 일리가 있네. 엄마는 왜 하필 우리 가족에 도움도 안 되는 정치를 하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30분도 채 안되어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나를 원망했다. 그러고는 엄마가 의원이 됐다고 제일 많이 자랑하고 다닌 사람이 바로 아빠거든요?’하고 속으로만 삐죽거렸다.


우리엄마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살뜰히 옆에서 챙겨주고 우리가 하교 한 후 집에 돌아오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거나 하는 엄마는 아니였다. 옛날 가난했던 6남매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곧잘 해 국립대학을 장학금 받고 졸업했고 교원자격증도 땄지만 가족 일을 돕다가 곧장 아빠를 만나고 큰딸인 나를 바로 임신하게 돼 꿈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나랑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학습지 선생님이 되었다. 해가 떠 있는 평일 오후에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건 우리 자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동네에서 동네 학부모들을 상대로 학습지 영업을 위해 파라솔을 깔고 설명하고 있는 날에는 계 탄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무튼, 나의 엄마는 내 기억 속에 항상 바빴고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땐 옆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꿈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50대에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 도와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가족들은 방해를 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아빠는 엄마에 대한 못마땅함을 이런식으로 딸들에게 엄마 몰래 표현하곤 하는데 우리 자매는 이런 표현들이 가끔은 불편하다. 대부분의 불만은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않는다”, 매 끼니 (당신의) 식사를 제대로 차려주지 않는다 등 지극히 아빠의 입장에서 아빠의 이익만을 생각한 것들이다.


사실, 할머니는 살아 생전 딸만 둘 낳은 엄마를 죄인 아닌 죄인 취급하며 우리 자매 앞에서 모진 소리만 쏟아내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꿋꿋하게 혼자 음식을 만들고 할머니의 푸대접도 묵묵히 견뎌냈다. 또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가 집안일까지 완벽할 수는 없고 30년 가까이 가족 끼니를 챙겨왔는데 다 늙어서 퇴직한 남편 식사 챙겨주기 위해 꿈까지 포기할 의무도 없다.


아빠는 내 친구들도 다 아는 유명한 딸 바보이다. 언제나 딸들과 함께하고 함께 다니길 좋아한다. 딸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고 할 때마다 아낌없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는 고마운 아빠다하지만 딸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아빠가 왜 엄마에게는 유독 엄격하고 보수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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