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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독립, 홀로서기, 가족

직장인의 임신기간 버텨내기

by 슬기로운언니 2020. 4. 10.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임신 소식을 알게 됐고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유산을 했다. 

 

돌이켜 지난 임신기간을 생각해보면 나의 유산은 직장 다니는 임산부에게 녹록지 않은 세상을 만만하게 보았고 나와 아기를 위해 세심한 조치를 취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동시에 임신 중 회사를 오가는 동안 느낀 것은 단 한 가지.

'워킹맘들 정말 대단하다' '나 한 몸 매일 회사 출퇴근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아기까지 뱃속에 품으면서 다니는 거지?'

 

 

 

대중교통 출퇴근

짧은 임신 기간 동안 나를 제일 괴롭혔던 것은 '입덧'이었다. 특정 물건/사람의 냄새나 음식이 갑작스럽게 구토를 유발했다. 

 

나의 경우 주로 지하철을 타고 편도 1시간 정도 걸려 출퇴근을 한다. 이때 지하철의 움직임이나 다른 승객의 몸 체취, 향수 등 평소에는 괜찮았던 모든 것들이 역하게 느껴지고 구토를 유발한다. 출퇴근 시간 지옥철을 피하고자 탑승했던 택시는 택시 특유의 묵은 냄새, 담배 냄새로 인해 구토가 나온 이후로 택시 탑승은 엄두도 못 냈다.

 

다행히 회사의 배려로 한동안 오후 조기퇴근을 실시해 퇴근길 지옥철은 면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 출퇴근 시 입덧 외에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언제나 만석인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임산부 지정석이 아닌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 앉아도 "여기는 임산부만을 위한 자리입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임산부 배려석'은 해당 좌석에 앉은 사람이 원할 경우에만 임산부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는 사회적 제도이다. 

 

임산부 배지를 보건소에서 받은 날, 나는 임산부 배지가 암행어사의 마패나 된 듯 의기양양하게 가방에 걸고 전철에 탔었다. (순진하게 임산부 배지를 보여주기만 하면 임산부 석에 앉은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가 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해 주는 줄 알았다.)

 

슬프게도 임산부 배지는 임산부석에 앉아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처음 출퇴근할 때는 눈을 감고 있는 아주머니께 자리를 양보해 주실 수 있냐고 직접 말을 걸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빈번했고 자리를 양보해주지 않거나 양보를 해줘도 못마땅하게 쳐다보는 시선 때문에 지하철 칸을 옮겨 다니며 비어 있는 임산부 배려석을 찾아다녔다. 

 

하루는 대중교통 출퇴근이 힘들어 애를 둘이나 낳은 워킹맘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그런데 "나는 출근길에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어떤 할아버지가 임신한 거 맞냐고 확인해보자면서 옷을 들쳐 올렸어"라고 말하는 그 친구의 대답에 말문이 막혔었다. 

 

직장생활, 결혼생활, 임신과 출산 등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실패했던 내 임신 기간 동안의 출퇴근 경험을 비추어보면 어떤 상황에서든 다음 두 가지는 꼭 필요하다:

 

첫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든 스트레스받지 말 것

둘째. 상황을 팩트로만 바라보고 문제가 있다면 해당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만 집중할 것

 

임신 중 임산부의 스트레스가 가장 아기에게 해롭다. 하지만 출근길 지하철 플랫폼에서 신체의 일부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들,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양보해주지 않는 사람들, 택시에서 담배를 피우는 운전기사 등을 마주칠 때면 쉽게 감정적이 되어 화가 나고 배려받지 못한 상황에 슬퍼지기 마련이다. 

 

상황을 팩트로만 보자. 임산부 배려석에 누군가 앉아있다면 천천히 옆 칸으로 옮겨 비어있는 임산부 배려석을 찾아보자. 

 

비싼 돈 주고 탄 택시에서 담배냄새가 나면 택시 운전기사와 싸우지 말고 내려 다른 택시를 타면 된다. 

 

지하철 플랫폼이나 큰길에서는 사람들이 신체를 건들지 않도록 양 옆 벽 쪽에 붙어서 천천히 가면 된다. 

 

회사생활

임신을 확인하고 회사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건 없는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 결과 유산 가능성이 높은 임신 12주 차까지 회사에서 2시간 단축근무를 해야 한다는 법 제도를 알게 됐다. 

 

내가 임산부 단축근무 신청서를 작성해 회사에 제출하자 이사님은 당황하셨다. 나 외에 이 회사에서 임산부 직장인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하니 이런 단축근무 신청서 또한 회사는 받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경영진 포함 직원 8명만 있는 작은 회사에서 임산부 단축근무를 허가받기 위해 나는 조기 퇴근 후에도 일이 있으면 집에서 근무하는 걸로 합의를 봐야만 했다.  물론 팀 저녁 회식이 있거나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경우엔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켜 팀원들과 함께했다. 그리고 중국으로 해외 출장도 한 차례 다녀왔다. 

 

지금 돌이켜 보면 회사에 조금 덜 눈치 보고 당당하게 상사, 동료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은 도와달라고 요청했어야 했다.

 

만약 도움을 요청했을 때 회사가 거절하거나 계속해서 회사 눈치를 보게 만든다면 그 회사는 분명 좋은 회사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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