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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 독립, 홀로서기, 가족

62년생 김지영

by 슬기로운언니 2018. 2. 9.

난 네 엄마가 다 늙어서 정치하는 게 싫다. 시에서 나오는 활동비로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길 해 시정활동 한다고 맨날 밖으로 돌아다니기만 하니 집안 청소나 살림이 잘 되어 있기를 해


엄마의 의정보고서 작성을 돕고 있던 나를 슬쩍 보더니 술 취해서 들어온 아빠가 엄마가 없는 틈을 타 한 말이다.


아빠의 이런 푸념을 듣는 순간 듣고 보니 아빠 말도 일리가 있네. 엄마는 왜 하필 우리 가족에 도움도 안 되는 정치를 하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30분도 채 안되어 이런 생각을 잠시나마 했던 나를 원망했다. 그러고는 엄마가 의원이 됐다고 제일 많이 자랑하고 다닌 사람이 바로 아빠거든요?’하고 속으로만 삐죽거렸다.


우리엄마는 나와 동생이 어렸을 때부터 살뜰히 옆에서 챙겨주고 우리가 하교 한 후 집에 돌아오면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주거나 하는 엄마는 아니였다. 옛날 가난했던 6남매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곧잘 해 국립대학을 장학금 받고 졸업했고 교원자격증도 땄지만 가족 일을 돕다가 곧장 아빠를 만나고 큰딸인 나를 바로 임신하게 돼 꿈 한 번 펼쳐보지 못하고 전업주부가 되었다.


나랑 동생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학습지 선생님이 되었다. 해가 떠 있는 평일 오후에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건 우리 자매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만 동네에서 동네 학부모들을 상대로 학습지 영업을 위해 파라솔을 깔고 설명하고 있는 날에는 계 탄 날이나 마찬가지였다.


무튼, 나의 엄마는 내 기억 속에 항상 바빴고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엄마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땐 옆에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 꿈을 포기하고 우리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엄마가 50대에라도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찬성한다. 도와주지 못한다면 적어도 가족들은 방해를 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가끔 아빠는 엄마에 대한 못마땅함을 이런식으로 딸들에게 엄마 몰래 표현하곤 하는데 우리 자매는 이런 표현들이 가끔은 불편하다. 대부분의 불만은 “()할머니를 자주 찾아 뵙지 않는다”, 매 끼니 (당신의) 식사를 제대로 차려주지 않는다 등 지극히 아빠의 입장에서 아빠의 이익만을 생각한 것들이다.


사실, 할머니는 살아 생전 딸만 둘 낳은 엄마를 죄인 아닌 죄인 취급하며 우리 자매 앞에서 모진 소리만 쏟아내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에 꿋꿋하게 혼자 음식을 만들고 할머니의 푸대접도 묵묵히 견뎌냈다. 또 사회생활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여자가 집안일까지 완벽할 수는 없고 30년 가까이 가족 끼니를 챙겨왔는데 다 늙어서 퇴직한 남편 식사 챙겨주기 위해 꿈까지 포기할 의무도 없다.


아빠는 내 친구들도 다 아는 유명한 딸 바보이다. 언제나 딸들과 함께하고 함께 다니길 좋아한다. 딸들이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고 할 때마다 아낌없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지원해 주는 고마운 아빠다하지만 딸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아빠가 왜 엄마에게는 유독 엄격하고 보수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는지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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